일상/끄적끄적

내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싶어서

싲니 2020. 9. 6. 08:43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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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코로나 때문인지, 아니면 원래 터질 게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는데 우울증이 왔다. 연초부터 무기력증은 있었는데, 자취방에 혼자 있어서 그런 줄 알고 본가에 내려왔는데도 알 수 없는 우울감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. 딱히 누구의 탓은 아닌 것 같다. 그냥 오랜 기간 나 자신에게 엄격했고, 계속해서 채찍질했고, 몸과 정신이 힘들다고 보내는 신호를 애써 무시하며 지냈다. 그러다 터졌다. 모든 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. 솔직히 말해서 말로만, 상상으로만 열심히 노력했지 올해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잘 모르겠다. 열심히 했던 건 독서와 운동 정도? 공부가 안됐다. 노력 자체를 하기 싫었다. 신물이 났다. '어차피 노력해도 안될 거니까'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자꾸 내 앞을 막았다. 이런 얘기를 남들에게 털어놓으면 다들 '네가 노력을 안 해서, 그저 편하게 살고 싶어서 그런 거다. 네가 게으른 거다. 배부른 소리 하지 마라. 너 나이 때 더 노력해서 안정적인 직장을 잡아야 한다.' 이런 말만 반복해서 하더라. 그만하고 싶었다. 사람 인생이 거기서 거기라지만, 내가 겪고 있는 이 힘든 상황을 다 안다는 듯 얘기하며 훈수 두는 사람들과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. 같은 상황을 두고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, 그 사람의 성향에 따라 고통이 다 다를 텐데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렇게 떠드는 걸까. 나라고 뭐 나에게 안 좋은 소리를 안 한 건 아니다. 했으면 남들보다 더 했지. 지금까지 내가 날 봤을 때, 나는 남들에겐 관대했지만 나에게는 참 야박한 사람이었다. 

 동기부여 수단으로 유명한 이론이 있다. 바로 '당근과 채찍'이다. 당근과 채찍은 과거 당나귀가 운송수단일 때 생겨난 이론이다. 당근이 어떤 행동에 대한 조건부 보상이라면, 채찍은 어떤 행동에 대한 조건부 처벌이다. 근데 나의 기준은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높았고 그래서 언제나 난 당근이 아닌 채찍을 선택했기에 무너졌다.  내 당나귀가 다쳤다. 그리고 다친 당나귀를 끌고선 나는 멀리 갈 수가 없다. 그래서 나는 당분간 지친 내 당나귀를 들판에 풀어둘 생각이다. 마음껏 풀도 먹고, 내달리기도 하고, 잠도 푹 잘 수 있는 그런 넓고 푸른 들판에 말이다.

 

 이틀 전에 우울증이 생각보다 심하다는 것을 느꼈다. 그냥 계속 눈물이 났다. 자존감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내 자신을 내가 자꾸 부정하게 되더라. 그러다보니 과거의 긍정적이었던, 빛났었던 순간의 나 자신만을 인정할 뿐, 현재의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지 못했다. 나 자신이 불쌍했다.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다른 사람도 아닌 '나'에게 이리 미움받게 되었을까. 어쩌면 지금까지의 내 연애가 망한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인 것 같다. 나 자신을 사랑해주지 못하는데 남에게 줄 사랑이 있었을까? 물론 그 당시엔 있었겠지만 결국 내 자신을 사랑해주지 못하니 점점 남에게 그걸 더 구걸하게 되더라. 사랑을 받고 싶은데 나중에는 그 사랑이 사라질까 집착하고 의심하고 매달리게 되더라. 자존감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느낌이었다.

 이성간의 사랑뿐만이 아니었다. 나는 가족에게도 극심한 애정결핍이었다. 어릴 때부터 불안했던 환경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누구에게나 '안정적이고 친절하고 믿을 수 있는' 사람이고 싶었다. 그래서 그렇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. 남들에게는 내가 책임감 있고, 끈기 있고, 든든하고,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겠지만, 그건 다 밉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란 걸 알기나 할까.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외로웠던 것 같다. 가면을 벗어던진 내 모습을 고스란히 볼 수 있었으니까. 근데 그걸 인정하기 싫었으니까.

 너무 힘들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다가 충동적으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. '내가 그냥 코로나에 걸린다면? 만약 죽는 게 힘들지 않다면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.' 나 자신이 무서워졌다. 살면서 내가 이런 감정을 가질 거라곤 꿈에서 조차 상상하지 못했었는데 지금 내가 그렇다니. 우울증은 방치할수록 거대해져 나를 삼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. 이 친구도 병이었구나, 나 스스로 벗어나고 완치할 수 있을까란 물음이 끊이질 않았다. 무작정 핸드폰을 켜고 정신병원을 찾아봤다. 보은에는 없더라. 그리고 이 좁은 곳에서 진료를 받았다간 분명 아는 사람의 귀에 들어가 그게 부모님에게 들릴 것이란 것은 안 봐도 뻔하다. 의지할 곳이 없었다. 찾아보니 국가에서 무료로 정신상담을 해주는 번호가 있었다. 전화를 걸었다. 지역번호를 누르자 통화연결음이 들렸다. 근데 내 마음을 온전히 털어놓을 용기가 없었다. 그렇게 두 번을 걸고 끊었다를 반복하다 핸드폰을 내려놓았다. 털어놓고 싶은데 막상 털어놓으면 '야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래. 이 세상에는 너보다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널리고 널렸어. 너 정도면 좋은 환경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거야. 힘내서 열심히 살아야지.' 이딴 말을 들을 것 같아서.

 아무리 재밌는 영상을 보고, 긍정적인 책을 보고, 좋아하는 드라마를 봐도 재미가 없었다. 쉬는 게 쉬는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지속된지 꽤나 오래됐다. '쉬자'라고 마음을 먹어도 어느새 나는 그것도 열심히 하고 있더라. 무슨 일을 시작만 하면 강박이 생겨서 결국 내 풀에 지쳐 나가떨어진다. 취미생활도 예외가 아니었다. 독서도, 운동도, 베이킹도, 요리도, 캘리그래피도, 드라마 시청도, 음악 감상도, 블로그 글쓰기도, 그리고 기타, 피아노... 그냥 남들이 쉬려고, 힐링하려고 하는 모든 활동이 내겐 숙제였다. 하루라도 안 하면 불안했고,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또 나에게 채찍질을 했다. '더 잘해야만 한다고.' 뿌듯한 결과가 나와야지만 행복했다. 그리고 그 과정은 결코 즐겁지 않았다.

 병원은 못가겠다. 그렇다고 전화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아 해도 똑같을 것 같다. 고민을 하다 유튜브를 켰다. 우울증을 검색하니 수백 개의 동영상이 켰다. 나 말고도 이런 기분을 느끼는 사람들이 이 지구 상에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니 좀 위로가 되었다. 그렇게 열몇 개의 동영상을 보고 댓글도 많이 읽었다. 나는 내가 이상해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해진 것이 아닌 그냥 지친 것 같았다. 내 몸과 정신이 '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마. 너는 절대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, 그냥 평범하고 사랑받고 싶은 한 사람일 뿐이야.'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. 그러다가 한 동영상을 봤다. '착한 아이 증후군'. 이거다 싶었다. 내가 왜 힘들었는지 해답을 찾은 느낌이었다.

 최근에 엄마랑 사이가 멀어졌다. 이제 착한 딸로만 살고싶지 않아서 그런가, 내가 먼저 다가가고 싶지 않았다. 이런 내 우울한 감정을 엄마에게 얘기했더니 돌아오는 말은 '네가 의지가 없어서 그래.'였다. 이건 의지 문제가 아닌데 말이다. 부품이 고장 난 기계한테 왜 전원을 연결해도 작동을 안 하냐고 묻는 꼴이었다. 세상에서 가장 믿었던 엄마한테 버려지는 기분이었다. 엄마는 내 자체를 사랑해주는 게 아니라, 착하고 바르고 성과가 좋은 '나'만 인정했던 거구나. 세상에서 믿을 건 나뿐, 내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주는 것도 나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. 내 불완전한 모습을 좋아해 줄 타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.

 그 이후로 몇 개의 동영상을 더 봤다. 인상깊었던 것은 '후회'와 '만족'은 같은 문장 안에 있을 수 없다는 것. '후회'없는 삶을 살아 '만족'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. 후회는 비교에서 오는 것이며, 만족은 자신이 잘할 때 생기는 것이기에 끊임없는 비교를 한다면 그 대상에 따라 내 만족도가 천차만별로 달라지고, 이는 곧 내 행복 그래프가 일정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. 그래, 나는 지금까지 기준을 내가 아닌 타인에게 두고 있었다.

 완전하진 않지만 그렇게 털고 일어났다. 이렇게 시간을 더 이상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. 얼른 극복해서 내 생활을 찾고 싶었다. 우울함은 주위에 전파된다는 것을 알기에, 그리고 그런 상황을 더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, 나는 나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다.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하고,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먹기로 했다. 지금까지 나는 내가 결정장애인 줄 알았다. 근데 나는 결정장애가 아니었다. 남들을 지나치게 배려해서 내 욕구를 계속 억눌렀던 것이다. 내 선호는 생각보다 분명하더라. 그리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다 좆까란 마인드로 갈 거다. 나는 내가 제일 소중하니까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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